홍재숙의 강서 한바퀴, ‘호국충혼위령비’

개화산, “그 숭고한 6·25 김포지구전투의 현장을 가다”

2022-10-31 오후 3:27:58

홍재숙의 강서 한바퀴, ‘호국충혼위령비

개화산, “그 숭고한 6·25 김포지구전투의 현장을 가다

 

 

그 이름도 숭고하다. 서울 강서구 김포개화산지구전투 호국충혼위령비!

 

 

 

 

1950년 626,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과 마주 보는 산인 개화산 골짜기에서 북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사흘간이나 벌어졌다. 북한군의 남침 다음 날인 26일부터 30일까지 치러졌던 전쟁이다. 육군 제1사단 11, 12, 15연대 소속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북한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장렬하게 싸워 숭고한 목숨을 나라에 바쳤다. 1,100여 명이 전사하고 37명의 생존자만 살아남았다. 장병들의 영혼이 너울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목격한 그날의 개화산 골짜기는, 오늘은 푸르른 신록으로 무성하게 자라서 역사를 껴안는다.

 

 

 

 

 

임무를 완수하라.” 육군 제1사단 장병들은 최후의 일각까지 북한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6·25 발발 다음 날인 26일이었다.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쳐들어온 북한군에 밀려 남쪽으로 퇴각하던 국군은 이미 김포비행장(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과 마주친다. 나라의 운명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육군 제1사단 장병들은 새로운 임무를 하달받는다. 서울 시민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퇴로와 김포비행장 사수, 아군의 방어선을 구축하라는 명령이었다.

 

 

 

 

 

개화산에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방어진을 쳤다. 1,100여 명의 장병들은 가족에게 보낼 최후의 편지를 개화산 골짜기에 풀어놓았다. 장병들의 사연을 읽은 개화산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바람에게, 풀죽은 햇살에게 소식을 전하라 했다. 장병들은 아군으로 위장복을 입은 북한군 대병력의 공격에 맞서 장렬하게 전투를 벌였다. 비록 본부와 연락이 끊기고 탄약과 물자보급이 끊어져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전투를 치렀다. 곁에서 총탄을 맞고 전우가 쓰러져도 이를 악물고 싸웠다. 3, 72시간 동안의 전쟁이었다.

 

 

 

 

 

살아남은 노병(老兵)은 증언한다. “한밤중에 벌어진 싸움이었고 생사의 경계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이었다.” 개화산전투에서 쓰러진 전우를 그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전쟁의 와중에서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전투의 격랑 속에서 적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엄청난 공포가 들이닥친다. 죽고 사는 절박한 찰나에 오로지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의로운 기상으로 총을 잡았다. 생과 사가 엇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1,100여 명의 용사들은 소중히 받들어온 이승과 의연하게 작별을 했다. 개화산 산신령도 속울음을 삼키고 이들을 맞이하며 하늘에게 빌었다. 아직도 여전히 유해를 찾지 못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주고 있다.

 

 

 

 

호국충혼위령비는 개화산 정상에서 미타사로 향하는 자락길 산책로를 걷다 보면 만난다.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미타사(彌陀寺) 바로 위에 호국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미타사도 6·25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비운의 사찰이다. 고려 후기 때 웅장하게 지어졌으나, 인천상륙작전시 적의 진지를 파괴시키는 함포에 맞아 불에 전소되었다. 지금의 미타사는 1924년에 토착 주민 권 씨(미타사 불교 신도)의 도움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절이다. 미타사 절 마당을 지나면 추모 공간이 우리를 부른다.

 

 

 

 

위령비 앞에 서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육군 장병들을 기리는 비와 마주하면 마음에서 비가 내린다. ‘모두 그대들 덕분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대들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불타는 나라사랑 정신 덕분입니다.’라는 조의문이 읊어진다. 장병들의 거룩한 호국 헌신으로 전쟁에서 이겼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하였다.

 

 

 

 

 

개화산 호국공원은 19943월에 육군 제1보병사단의 전사자 1,100여 명과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예하 부대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의 높이는 4.7m이고 건립 주체자는 육군 제1사단과 미타사이다. 201712월에는 전사자 명각비와 추모의 벽, 기념조형물을 제작하여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매년 628일에는 개화산전투전사자추모사업회’,‘서울지방보훈청’,‘육군제1보병사단전진부대’,‘서울시강서구전사자가족과 영웅들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여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전사자 명각비에는 1,100여 명의 호국순국용사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전국 각지에서 입대한 푸르른 청년들의 이름이 강원도 강릉 김인석, 최찬계이름을 선두로 각 도, 각 고장별로 적혀있어 마음이 에인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충성!” 경례를 하고 씩씩하게 군대로 향했을 기백이 명각비에서 꿈틀거린다. 전사 통지서를 받고 주저앉아 울었을 부모들의 눈물도 함께 어린다. 조국의 운명을 양어깨에 얹고 전투에 임했을 그들의 결기에 찬 눈망울이 명각비 이름에 얹혀있다.

 

 

 

 

6·25 참전유공자 명각비 이름 안에 92세로 생을 마친 시아버지의 이름도 있다. ‘상사 조건행아버님의 이름에서 젊은 청년이 걸어 나온다. 21살에 공군 5기생으로 입대해서 상사 계급으로 복무하던 24살 초여름에, 6·25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전쟁터로 달려갔다. 온 국토가 전쟁터로 변해서 초토화되었던 그 참혹했던 시절에 아버님은 가족들과 짧은 이별을 뒤로하고 화약 냄새 가득한 전쟁터로 떠났다. 아내와 4살 아들, 부모님과 동생들을 눈에 담고 군대로 향했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포화 속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1950년 가을, 아버님의 부대는 38도선을 돌파하여 평양 미림비행장까지 행군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집에 돌아와서는 한 집안의 고단한 장남으로 가족을 위해 당신의 삶을 다 바쳤다. 공무원 정년퇴임 후에는 대한민국6·25참전용사회’,‘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회원’,‘대한노인회강서지부부회장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의 엄중한 숙제인 통일을 위해 활발하게 봉사를 했다.

 

 

 

 

김포개화산지구전투는 잊혀진 전투가 아니다. 육군 제1보병사단 1,100여 명의 혼백이 잠들어 있는 성지이다. 우리 후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개화산 자락길을 오르면 호국공원에 들러서 호국충혼위령비앞에 경건히 옷깃을 여미자.

 

 

 

 

 

 

강서뉴스: 홍재숙 기자(수필가, 소설가, 가산문학회 회장, 2022 강서구민상 미풍양속부문(효행상)수상자)

 

 

 

강서뉴스 (shinnakhyung@hanmail.net)

의견보기

  • 고순례 (2022-11-02 오후 8:04:16)   X
    홍선생님 덕분에 개화산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고 우리동내 자부심을 갖게 하네요수고많으셨습니다
  • 희남매맘 (2022-10-31 오후 9:21:15)   X
    개화산에 가슴아린 일도 있었군요. 계절마다 예쁜 옷을 입는 자연을 벗삼아 가족과 가끔 개화산 둘레길을 다니는데 개화산에 오를 때 충혼비에 꼭 들려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신 호국영령들의 숭고함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임정연 (2022-10-31 오후 8:21:05)   X
    가까이에 이런곳이 있군요. 홍재숙 기자님 덕분에 역사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 강서구민 (2022-10-31 오후 6:44:03)   X
    강서구에 이런 뜻깊은 곳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이들과 등산만 다녔던 곳이 다르게 다가오네요^^
  • 정은영 (2022-10-31 오후 6:38:54)   X
    개화산! 그냥 서을의 많은 산들 중 하나를 오르내리는 거라 생각없이 다녔는데 이토록 가슴뭉클한 사연이 있을 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 황유경(장슬우맘) (2022-10-31 오후 6:28:40)   X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미타사 호국충혼비.. 바로 옆에 있어 늘상 지나다니면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고 살고 있었네요. 덕분에 새로운 역사를 알고 갑니다.
  • 신삼숙 (2022-10-31 오후 6:17:42)   X
    홍재숙 선생님 덕분에 개화산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되었네요.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 정혜숙 (2022-10-31 오후 6:05:53)   X
    홍재숙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 여태껏 몰랐던 계화산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혜숙 (2022-10-31 오후 6:04:20)   X
    홍재숙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 여태껏 몰랐던 계화산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혜숙 (2022-10-31 오후 6:03:38)   X
    홍재숙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 여태껏 몰랐던 계화산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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